요즘은 100층이 넘는 고층빌딩도 손가락에 꼽을 만치의 햇수만 지나면 금방 지어진다. 그만큼 건축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같은 기술도 없던 그 시절에 높이가 100m가 넘는 바티칸 성당의 돔이라든가, 생미셸 대성당, 노트르담 성당 같은 웅장한 건축물들을 어떻게 지었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만큼 신에 대한 열망과 영생에 대한 의지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였음을 반증하는 것일 테다.
이번 여행을 통해 세계 3대 성당이라고 하는 곳을 다 가봤다.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물론 종교개혁을 유발했을 만큼 많은 돈을 들여 지은 베드로 성당이지만, 분명히 그 자체는 훌륭한 문화재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마침 미사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덕분에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고딕 양식의 대성당에서 미사 드려보기―을 할 수 있었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가장 처음 방문했던 성당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첫인상으로 강하게 다가왔다.
다음은 베드로 대성당을 구경하고 있을 때 진행되던 미사 장면이다. (가져간 카메라의 제한으로 30초밖에 안 된 것이 아쉽다 ㅠ_ㅠ)
같이 갔던 내 형도 했던 얘기지만, 어렸을 때는 예수님이나 성서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이 신화처럼 들렸는데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음을 대중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한 증거물들을 보니 느낌이 달랐다. 얼마 전만 해도 이성적 논리로는 하느님의 존재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서가 진실을 담고 있는 책임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 무엇보다도 논리적으로 하느님의 존재가 이해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유럽여행을 통해 체험한 바도 있을 것이다. (예전엔 '말로만' 믿었다면 이젠 '진짜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달까. 몰론 아직은 좀더 성숙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지만.)
특히 여행 마지막날에 갔던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에서 드렸던 미사는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프랑스어로 미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히 전례의 모든 형식과 말귀가 같음을 알 수 있었다. 주기도문을 낭송할 때는(이때는 신부님이 양팔을 드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심지어 프랑스어임에도, 내가 한국어로 낭송하는 것과 운율이 맞는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전 세계 도처에 퍼져 있는 모든 성당들에서, 같은 전례로 미사를 드린다는 것을 직접 느끼는 순간이었고, 그만큼 바티칸과 교황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도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런 지금의 교회가 있게 한 하느님과 예수님 또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음은 직접 디카로 찍었던 당시의 미사 장면이다)
다만 좀 특이했던 것은, 여자 신도들이 미사보(머리에 쓰는 흰 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종교 개혁, 양성 평등 등의 주장이 나타나면서 유럽 쪽 가톨릭 교회에서는 미사보를 철폐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과 같은 성물방들도 주요 교회에만 두고 거의 없앴다고 한다. (성물에 대한 미신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좀 달랐던 점은, 우리나라 성당에서는 성가를 신자들이 직접 부르는 것이 대부분인데 비해, (거기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노틀담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부르지 않고 성가대만 부른다는 점이다. 주로 바흐 등 고전 음악가들의 미사곡을 직접 노래했다. 그것이 더 장엄할 수는 있겠지만, 성가를 직접 부르면서 느끼는 감동이랄까, 그런 것이 없다는 건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